수업 기술주의(技術主義)를 배격하자
해마다 학기초가 되면 ‘공개수업’ 계획을 두고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돈다. 취지대로라면 발전적인 수업을 위해 토론하고 연구하는 자리여야 되지만, 실제 공개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는 부담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왜 그럴까? 선배들은 그러면서 간덩이가 커지는 거라고 하지만, ‘공개수업’은 늘 피하고 싶은 그 무엇이다.
지역별 차이는 있지만 최근, ‘수업달인’, ‘수업명인’, ‘수업경연대회’, ‘수업전도사’, ‘수업기술연구소’ 등 노골적으로 ‘수업기술’의 문제를 전면화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수업을 바라보는 이러한 기술주의적 관점이 실제 현장의 수업에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수업의 표준화, 정형화, 획일화, 계량화이다. 기술은 기본적으로 표준화를 추구한다. 효율성과 경제성을 본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장학사들은 어떻게 수업과정을 계량화해서 서열화할 것인가에 골몰하고 있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수업의 통제에 이르고, 궁극적으로 교사와 교육을 통제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수업연구의 내용은 급기야 ‘좋은수업이란 어떤 수업인가?’에 대한 본질은 사라지고, 정형화된 틀을 얼마나 잘 수행했는가의 문제로 전락한다.
가장 큰 변수는 아이들이다. 물론 해결책이 있다. 합의된 쇼를 하는 것이다. 그것도 감동이 있는 준비된 쇼를 하면 금상첨화이다. 결국 교사의 화려한 테크닉과 지휘만 남고, 아이들이 없다. 아이들은 변화와 상호작용보다 교사가 아이들을 얼마나 잘 다루는가의 문제에 집착한다.
그래서 늘 기술주의적 관점에서 수업을 보면 좋은 수업의 첫째 조건은 교사가 정형화된 수업 프로세스를 단위 차시안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수행했는가의 문제이다. 학교는 아이들의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전인교육의 장이다. 학교와 학원의 중요한 차이다. 수업은 학교를 구성하는 제반환경의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전부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의 여건에서 더 중요한 것은 수업테크닉보다 수업에 대한 교사의 성실성이며, 충실한 수업을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학원선생보다 못한 교사’라는 오명을 벗을 유일한 길은 수업 기술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런 올곧은 철학이 아이들과 수업을 대하는 교사의 자긍심과 진정성을 빛나게 만들지 않을까?
이재남·광주 산월초 | 기사입력 2007/05/13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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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희망≫ 수업 기술주의(技術主義)를 배격하자
해마다 학기초가 되면 ‘공개수업’ 계획을 두고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돈다. 취지대로라면 발전적인 수업을 위해 토론하고 연구하는 자리여야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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