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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돈이 행님 돈이요 ?"
물고기와대화
2024. 4. 1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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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에 들어와 일 하기전에, 노동조합의 사무를 총괄하는 사무처장 역할을 한 적이 있다. 조합원들의 요구를 기반으로, 복지, 재정, 조직, 교섭, 대외협력 등 모든 일에 관여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일은 단체교섭을 통해 협약을 이끌어내는 일이다. 일반 노동조합에서는 임금협상이나 노동조건이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공무원인 교사노동조합에서는 노동조건을 개선하는데, 집중된다. 야간근무시간이나 방학중 근무시간, 결보강수당, 휴가제도 개선, 성과급, 업무 분담 등이 주요한 의제가 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노동조합은 온 힘을 다해 사용자와 교섭하고,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투쟁한다.
이른바 진보 교육감이 들어서기 전에, 전교조 상근 간부로서 단체교섭을 추진한 적이 있다. 우리는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내기 위해 전력을 다했고, 그 결과 상당한 개선을 만들어 냈다. 교섭하다 보면, 부족해서 조합원들로부터 비판을 받는 점도 있고, 반면에 다소 요구사항이 무리하다고 생각하는 포인트가 전격적으로 타결되기도 한다. 단체교섭의 속성상 어쩔수 없는 부분이 있다.
나는 어제까지 노동자 입장을 대변해서,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사용자(교육청)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던 위치에서, 오늘은 사용자의 입장에서 노동조합의 거친 요구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양쪽에서 비난받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용자의 처지에 있는 직원들은 노동조합 편만 들고, 교육청과 학교, 직원들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비아냥과 서운함이 있었고, 노동조합으로서는 어제까지 정당하다고 갖은 논리로 주장했던 이가, 반대편에서 법과 재정을 운운하면서, 난색을 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완전히 사람이 변했다거나, 출세주의자가 되었다고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언젠가 공무직 직종과 단체교섭을 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몇십 억대의 예산이 필요한 처우개선 사업이 쟁점이 되었다. 단 1%라도 수당 등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동조합의 입장과 재정 형편, 다른 직종이나, 타 시도와의 형평성, 학교 현장의 어려움 등을 고려해야 하는 교육청으로서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난색을 표하게 된다. 그때 평소 안면이 있던 친구가 갑자기 잠깐 보자고 하더니, 복도에서, 버럭 소리를 지르며 언성을 높였다.
" 아니, 이 돈이 행님 돈이요? 솔직히 말하면, 어차피 1년 안에 써야 할 돈이고, 국민의 세금인디, 무슨 충신이 났다고, 그렇게 떨떠름하요. 았따~ 충신났소야. 다른데 쓰는것 보다, 노동자 처우개선에 쓰는 것이 더 좋은 일이제. 경거망동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씨요 잉. 확 엎어 불랑께 "
밤늦도록 진행되는 교섭장 밖을 서성이며, 생각이 많았다. 불꺼진 농성장 천막을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저 입장이었을 때, 나는 더 했으면 더했니 덜하지 않았을 거다. 그때 그 심정을 모른 바가 아니지만, 이 돈이 네 돈이냐고, 따지는 모습은 지금도 생경하기만 하다. 어쩌면 나의 태도 속에서 '내 돈인 것 처럼‘, 거들먹거렸을 수도 있고, 소위 관료적 (?) 자세로만 비쳐졌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이쪽저쪽을 빙의(?)하고, 이심전심해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런 문제는 그 후로 훨씬 심각한 상황이 많이 벌어졌다. 특정 직종에서, " 선거운동 시켜 놓고 인제 와서 딴소리냐?"는 대형 현수막을 교육청 앞에 펼쳐놓고, ’공무원들이 불법선거운동을 사주 했다‘는 기자회견과 농성을 시작한 일이나, 각 단체의 대표가 작성하여 서명한 업무분장 합의서를 그다음 날 집행부의 반대로 무효화 하겠다고 헐레벌떡 쫓아온 일,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하여 유포한 일, 오함마를 들고 문을 부수던 일, 대형 거중기로 들어 올린 농성용 컨테이너 설치를 놓고, 설치를 막겠다는 직원 일부가 공중에 떠있는 컨테이너 밑으로 들어가 노동조합과 실갱이를 벌였던 일, 교육감한테 투표한 내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고 윽박지르던 그 순간들이 생각이 난다.
참으로 힘들고 험난한 시간들 이었다. 애간장이 녹는다는 말의 의미를 깨우치는 순간들이었고, 불면의 나날들이었다. 나는 운명처럼 경험없는 나약한 모습으로 그 사이에 서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시간들이, 역사를 발전시킬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버텼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