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도, 디케의 역설
광주매일신문 2018.12.24.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은 왜 눈을 가리고 있을까? 제우스와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정의의 여신 디케는 한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한손에 들고 있는 저울은 판단의 공정성과 엄정성을 의미한다. 매사에 한 치의 편향됨이 없이 죄형법정주의에 입각하여 정확한 기준에 근거하여 냉철하게 판단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칼의 의미는 무엇일까? 저울의 기울기에 따라 단호하고, 정확하게 칼날을 들이대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을까?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디케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지만,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두 눈을 뜨고 있고,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다. 반면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디케는 칼을 들고 눈을 가리고 있다. 정의의 여신 디케가 눈을 가리고 칼을 들고 있는 것은 시쳇말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사사로운 감정에 억매이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가차 없이, 일체에 선입견을 배제하고, 걸리는 대로 칼을 내리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철학자 롤스는 눈을 가린 디케를 빗대어 ‘베일의 정의’로 표현했으며, 이러한 정의론은 입사시험이나 대학 실기 시험등에서 커튼을 치고, 블라인드 면접의 정당성을 제공했다. 누구인지 모를 때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자유로운 정의(무지의 베일)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명한 롤스의 무지의 베일이다.
반면에 공동체주의자인 샌델은 인간은 원래 살아온 사회의 가치와 미덕이 이미 내재화 되어 있어서, 사회 현실을 떠나서 탈맥락적으로 정의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형식적 정의라고 비판한다. 세심하게 살펴야 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형식적 정의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구의 말이 옳을까? 국민권익위원회가 1년에 한 번씩 모든 행정기관의 청렴도를 조사하여 발표하고 있다. 올해 교육청은 하위등급인 5등급 판정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결과에 대해 의아해 하고 고개를 기우뚱 거린다. 막상 일선 현장의 학부모들은 교육 현장이 참 깨끗해 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촌지봉투가 사라지고, 청소나 체험학습에 동원되는 일도 사라졌다고 한다. 교육청을 상대로 사업하시는 분들도 과거처럼 인맥이나 연고를 중심으로 계약, 납품하던 시대와 확연하게 달라졌다고 한다. 1천만원 이상의 모든 공사는 입찰을 원칙으로 하고, 고강도 감사를 통해 부정과 비리를 척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오히려 너무 경직된 회계규정의 적용 때문에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원성도 심심찮게 받는다.
그런데 왜 청렴도는 하락한 것일까? 물론 권익위 청렴도 조사의 신뢰성이 의심되는 측면도 있다. 1등을 했던 교육청이 1년 만에 중하위권으로 떨어지는 걸 보면, 청렴도가 1년 사이에 이렇게 널뛰기를 하는 것은 조사 신뢰도의 심각한 결함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청렴도 내부의 조사알고리즘을 분석해보면, 과거의 금품수수 여부를 중심으로 했던 청렴도 조사에서 ‘청렴문화’를 더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국민들은 부패척결은 기본이고, 이제는 감동이 있는 고품질의 행정서비스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청은 행정의 공정성을 넘어 감동을 요구하는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특단의 대책을 고민 중이다. 지속가능한 청렴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그래서 이제 디케의 눈가리개를 조심스럽게 벗겨내려고 한다. 두 눈을 크게 뜨고도 더 공정해야 하고, 오히려 판단의 영역 밖에 있는 보이지 않는 가려움을 긁어줄 수 있는 청렴정책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칼을 내려놓을 수는 없다. 교육청은 칼은 더 예리하게 유지하되, 미리 예방하고 혁신할 수 있는 따뜻한 청렴정책으로 변화되기 위한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