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2021.12.09.
‘까치 뱃바닥 같은 소리 한다’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까치의 온몸은 새카맣지만 배 부분은 눈처럼 희어서 금방 눈에 띈다. 그래서 이중적이거나 속이 환히 보이는 처세를 하거나, 언젠가는 드러날 뻔한 일에 능청을 떠는 경우를 일컬어서 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정도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자기모순을 가지고 살아간다. 겉으로는 성인군자인 척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저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적당주의와 자기합리화에 기대며 살아간다. 이러한 자기모순을 스스로 대하는 태도에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첫 번째는 자기모순을 반드시 극복해야 할 전략적인 태도로 대하는 것이다. 일종의 근본주의적 태도다. 스스로 모순된 행동이나 잘못된 처신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모순을 극복하지 못하면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자학과 자책으로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나의 모순됨을 죽음을 통해서 사죄하고, 극복하고 싶은 근본주의적 태도의 전형이라 할 것이다.
둘째는 전술적 태도이다. 자기모순은 누구든지 있을 수 있고, 재수가 없어서 발각되었을 뿐이며, 앞으로 반성하고 고치면 된다는 태도이다. 사람이 어떻게 교과서대로만 살 수 있나? 살다 보면 욕도 하고, 남의 돈을 빌려서 못 갚기도 하고, 지나가는 번듯한 남/여를 훔쳐보기도 하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힘 있는 자에 붙어서 아부도 하고 그런 것 아니겠냐고 한다.
세상의 변화를 시작하는 이들은 근본주의자들이다. 자기 자신에 엄격하고, 냉철한 이들에 의해 숭고한 가치가 만들어지고, 흔들림 없고 올곧은 실천의 바탕 위에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진다. 세상의 모든 피 흘리는 전쟁의 뿌리에는 자기모순과 처한 상황을 전략적으로 극복하고자는 근본주의자들의 투철함이 있다. 이런 근본주의는 세상의 약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강요하면 독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의 범인들은 자기모순에 관대하지 않고서는 하루를 살아갈 수가 없다. 오늘 내가 무심코 뱉은 한마디가 상대의 가슴에 비수가 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잠을 못 이루고, 교통법규를 위반하여 큰 사고가 날뻔한 출퇴근 길의 장면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범인들은 매일매일 내 몸의 하얀 까치 뱃바닥을 쳐다볼 작은 용기에 기대며 살아간다.
선거는 리더를 선택하는 중요한 민주주의의 과정이다.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할까. 까치 뱃바닥 같은 소리가 범람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다 같은 ‘까치 뱃바닥같은 소리’가 아니다. 모두가 까치 뱃바닥같은 자기모순의 세계속에 살지만, 용기를 내어 뱃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용서를 구하는 자가 있다. 그것은 대단한 용기이며, 성찰이다. 참으로 반성하는 이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사회가 희망의 사회가 아닐까. 저잣거리에서 돌멩이를 맞고 피 흘리는 여인을 감싸며, 너희들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그 간절한 눈빛 속에는, 남의 뱃바닥만 보지 말고, 내 뱃바닥도 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살육이 멈추지 않을 것임을 웅변한 것이다. 자기모순을 용기 있게 쳐다보고 성찰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이다. 검은 세상을 하얗게 덮고 나니, 이윽고 명암이 사라진다. 관계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사랑이, 온 세상에 가득하니, 천국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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