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임기말의 화두는 민주적 통제다. '민주'와 '통제'라는 말은 웬지 형용모순처럼 들린다. 민주면 민주지 통제는 또 뭔가? 민주주의에 통제가 필요한가? 정권은 부침하지만, 사회는 민주주의를 향해 발전해 왔음을 확인하고 있는 지금, 절차 민주주의의 끝자락에서 갑자기 만난 이 '민주적통제'라는 말이 뭔가 심오한듯 하다.
인간의 역사는 자유를 향한 역사다. 맘모스와 공룡, 천둥과 폭풍과 싸우며 자유를 획득해 나갔고, 거대한 태양신과 전지전능한 하늘신과도 싸웠다. 옥황상제와 임금님과도 싸워서 인간이 최초로 획득한 무기는 '시민'이라는 이름과 조그만'조개껍데기'하나였다. 더 이상 우리를 통제하는 왕은 필요없다. 설사 필요하다면 우리손으로 직접 뽑겠다. 이것이 폴리스에 모인 시민들이 들고 있던 조개껍데기 투표이다. 최초의 직접통제의 민주주의의 기원이다. 히틀러와 군국주의자들과 전쟁하면서, 인류는 통제되지 않는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절감했다. 신을 대체한 인간은 위험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통제하기 시작했고, 그 흔적들이 삼권분립이고,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시스템들이고, 전횡과 독점을 예방하는 법들이다.
그리스로마신화에는 사이렌이라는 요정이 나온다. 신비롭고 감미로운 노래소리와 날카로운 발톱과 날개를 가진 사이렌은 섬 주위를 지나가는 선원들을 유혹하여 잡아먹었다고 한다. 사이렌의 노래소리는 아름답고 희망적이지만 한번 들은이들은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유인되어서, 죽임을 당했다. 모든사람들이 사이렌에 잡아먹힐때, 그 섬을 무사히 지나간 지혜로운 한사람이 있었다. 노랫소리는 듣지만, 유혹에 빠지지 않는 방법이다. 오디세우스는 노를 젓는 사공들의 귀를 밀랍으로 틀어막고, 자신은 돛대에 밧줄로 몸을 꽁꽁 묶었다. 자신은 노랫소리를 듣고 그 유혹에 몸부림치지만, 귀를 막은 뱃사공들은 앞으로 노를 저어 그 섬을 무사히 빠져나가게 되는 이야기이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찾아낸 가장 아름답고, 지혜로운 희망의 노래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통제를 전제로 한다. 견제 되지 않는 히틀러와 같은 권력은, 폭군이 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아름답고 달콤하지만, 돛대에 몸을 단단히 묶지 않으면, 어디로 갈지 모른다. 치명적인 사이렌에 잡아먹힐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부는 사이렌의 노랫소리에 유혹당한 오디세우스를 돛대에 묶기 위해 많은 피를 흘리고 있다. 한명, 두명, 세명…… 그들 스스로를 위한 일이고, 아름다운 희망의 노래소리를 듣기 위함이지만,권력에 중독된 그들은, 밧줄에 묶이는 지혜를 받아들일 수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겨우 묶은 밧줄이 풀려서, 다시 선원들의 밀랍을 뽑아내고, 우리를 사이렌섬으로 데려고 갈 수 도 있다.
어떤 유혹도 견딜수 있다고 자신하는 그들은 돛대에 묶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자신들을 믿으라 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알고 있다. 통제되지 않는 권력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수사권을 갖게된 경찰들은 어떨까? 절차의 권력을 갖고 있는 의회는 어떨까? 감시와 비판을 담담하고 있는 언론은 어떨까? 국민의 모든 정보를 감시할 수 있는 정보기관은 어떨까? 영세한 상인들의 생사권을 쥐고 있는 거대기업과 자본들은 어떨까? 그들안에 폭주하는 권력의 핵심을 돛대에 묶어야 한다. 그래서 아주 작은 권력이라도 사적권력을 꿈꾸는 자들의 자유를 돛대에 꽁꽁 묶어 자물쇠를 채워야 한다. 이것이 민주적 통제다. 그래서 모든 권력은 국민앞에 순한 양이 되어야 한다.
민주적통제의 밧줄을 들자. 그리고 하나씩 철저하게 돛대에 묶어 세우자. 신축년 새해에는 모든 권력기관에 오직 공익과 정의의 노랫소리가 충만하기를 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사이렌섬의 어디쯤 지나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