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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논리와 역사논리 [남도일보 기고]

물고기와대화 2024. 4. 1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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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적 갈등의 배경에는 늘 진영논리가 있다. 이 진영논리를 비판하는 이들은 패거리 논리이자, 폐쇄적인 진영논리라고 비판한다. 반대 진영에서는 강자와 양극화의 논리에 대응하는 선하고 정당한 논리이며,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논리라고 한다. 양 진영은 서로 좌표를 찍고, 공격을 개시하며, 프레임 전쟁을 벌인다. 진영논리는 크게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전쟁을 정당화하는 논리이고, 정치집단에서는 강령과 같은 정체성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 진영논리들은 어떻게 서로를 받아들이고, 발전적으로 극복될 수 있을까? 이럴 때마다, 식자들이나 언론에서는 양비론이나 양시론을 통해, 양쪽 진영을 비판하면서, 심판의 역할을 자처하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갈등을 조절할 시스템의 부재나 사회 문화 수준, 어른의 부재, 정치의 파당화를 걱정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는 좌우 갈등이 잔인하게 진행되었던 해방 전후사의 비극을 상기시키곤 한다.

이런 문제를 고민한 학자 중에는 정반합으로 상징되는 ‘변증법’의 철학자 헤겔이 있고, ‘지평 융합’을 말한 해석학자 가다머가 있다. 진영에는 깨지지 않는 진영논리가 있다. 그 진영에 충실한 자기 진영의 권력을 잡는다. 문제는 이 진영의 논리가 그 시대, 그 상황 속에의 논리라는 점이다. 이 진영논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사논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역사논리는 인간이 걸어온 길을 통해, 향후 전개될 세계를 내다보고, 오늘의 논리를 성찰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일종의 전략적 판단의 중요성을 말한다. 전술적인 전투에는 유연하되, 종국적으로 전략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태도를 말한다. 일본의 중국침략에 대항하여, 국공합작을 통해 항일 민족 통일전선을 펼쳤던 모택동의 전술과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을 들 수도 있겠다.

실제 문제 해결력은 이런 유연함에서 나온다. 근본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전략적 차선책’이 갖는 문제 해결의 효능감을 놓치기 쉽다. 물론 이런 관점은 늘 회색주의나 개량주의 관점으로 결과적으로 상대 진영에 투항하는 교란의 논리로 비판받는다.

진영논리의 극복은 자신의 선입견과 편견을 초월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문제상황을 대면하고, 역사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찾고, 열린 자세로 대화에 참여할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우리에겐 빨갱이와 파랭이로 나눠서, 밤낮으로 진영이 바뀌며, 피를 흘리며 싸웠던, 아직도 끝나지 않는 ‘가슴 아픈 역사’가 있다. 또 우리에겐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민주화 시대를 열었던 ‘저항의 역사’가 있다. 또한, 우리에겐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만들어 낸 ‘한강의 기적’의 역사가 있다. 소시기 국면에서는 시대적 소명과 같은 투철한 진영논리가 강조되기도 한다. 꼭 필요한 진정성이고 충실성이고, 시대적 양심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때의 진영논리도 시간이 흐르고, 시대 상황이 변하면서, 그 힘을 자연스럽게 잃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 순간 필요한 것이 역사적 경험과, 전략적 유연함, 시대정신을 ‘후킹(hooking)’하는 능력이다. 그 시대를 후킹하는 능력은 진영논리의 진정성을 너머,  인간이 걸어론 길로부터, 역사논리의 교훈을 받아들일 때가 아닐까.

이재남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정책과장)

2024.04.11 남도일보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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